누군가를 너무 좋아하지 않기 위한 결심
고백하자면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혐오가 만발한 시대에 사랑이 전부 이긴다 이런 말은 아니고요. 그런 거창한 건 아닙니다. 그냥 고백한다, 솔직히 말한다는 표현을 좋아해서 서두에 적어 봤습니다.
사람은 양면적입니다. 그렇다고 이분법으로 딱 나눠지는 것도 아니고, 정육각형도 아니고, 퍼즐도 아니지만. 단순히 말하면 좋은 점이 있으면 안 좋은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쁜 점이라고 썼다고 문장을 고쳤습니다. 나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도덕적, 윤리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걸 제외하고요. 정말 단순하게요. 나쁜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나와 맞는 사람, 맞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요. 저는 사람들의 이런 점이 정말 피곤하고 싫지만 그래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아무래도 사람을 좋아하게되는 역치가 낮은 것 같습니다. 낯선 사람과 만나서 조금 이야기하다보면 '이 사람은 이런 점이 참 배울만하다' 하는 생각이 들면 경계심이 사르르 녹아버립니다. 거기다가 같은 걸 좋아한다면, 제 마음의 벽은 허물어지다 못해 완전 개방이 되어버리는 거죠. 물론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도 있어요. 친구가 된다고 해서 그 모든 걸 다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하는 게 좋냐는 친구의 말에 "네가 먼저 솔직하게 표현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얘기하는 것 만큼 쉬운 일은 없으니까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다가가는 상대에게 침 뱉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물론 진짜로 침을 뱉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상대 마음의 울타리를 박살내는 말이 될 수는 있겠죠. 나 너 좋아해! 하면 견고했던 바운더리가 쾅 하고 부서지고.
물론 이렇게 많은 사람을 좋아하다 보면 단점도 당연히 생깁니다. 피곤하고 힘들어지더라고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나는 왜 좋아하는 사람들의 고민을 들으면 적당히가 안 되고 항상 전력을 다해 이야기해주고 싶을까. 나는 왜 이 사람의 고민에, 삶에 당사자보다 더 많이 집중하게 되나. 이런 고민을 하다가 깨달은 건, 제가 그들을 너무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고민을 듣고 해결해주고 싶고, 더 깊이 개입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슨 운명의 수레바퀴에 탑승한 것처럼 돌고 또 돌고.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괴롭고, 힘들어하는 것들이 반복됐어요.
몇 번이고 괴롭게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너무 많이 좋아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을 전부 그만둔다는 건 절대 아니고요. 그냥, 적당히. 뭐든 적당히가 제일 어렵고 알 수 없는 거지만. 그래도 적당히 좋아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가 2년 전의 생일에 주었던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인생은 기나긴 여정이니 모든 사람을 너의 동반자로 삼으려고 하지 말고, 잠깐 들리는 여행지라고 생각하라던 말을요. 그래요. 간단히 말해서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임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친구의 편지를 다 읽고도 '그 여행지가 정말 인생에서 단 한 번 뿐인, 인생 여행지라면 어떡해?' 하고 생각했지만, 그 말은 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구제불능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요즘은 노력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삶에 너무 상처받지 않도록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