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고 엄마와 함께 지내고 있다보면, 어느순간 우리를 부르는 호칭이 많이 달라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삼 남매를 다 '아기' 하고 불렀습니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 여섯 살 터울의 남동생, 열 세살 강아지와 다섯 살 고양이, 그리고 스무살 후반의 저까지 전부 아기라고 부릅니다. 최근에는 길쭉이 보리 쌀 강정을 얻어와서는 "애기도 먹을래?"라고 물어 덥썩 좋다고 두 개만 달라고 하였더니, 엄마가 두 개를 가지고 나머지를 전부 저에게 주셨습니다. 왜 이렇게 많이 주냐니까 엄마는 맛만 보려고 했다며 "우리 애기 다 먹어라"라고 하셨는데 괜히 마음이 찡했습니다.
다정한 목소리와 애칭에 담긴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애칭이라는 게 내가 마음을 다해서 사람에게, 물건에게, 친구에게 혹은 반려동물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름을 붙인다는 건 상대가 무엇이든 그것에서 오랫동안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주문 같은 거라고요.
초등학교 때 예쁘게 생긴 돌들을 모아서 이름을 붙이고, 책장에 붙어 있는 작은 서랍 한 켠에 넣어두었다가 가끔씩 꺼내어 보았습니다. 동생들에게 자랑도 하고요. 그렇게 이름을 붙인 돌들이 열 개쯤 넘어가니 외우기가 힘들어 돌멩이 바닥에 이름을적어두었어요. 대단한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바둑 점이 있는 돌에는 바둑이라는 이름을, 짙은 검정 색의 돌에는 까망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그 흔한 돌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내 친구처럼 느껴졌습니다. 가끔 동생들이 없는 곳에서는 돌에게 말도 걸었던 것 같아요. 나는 오늘 뭘 하며 하루를 보냈는데, 너희는 그 어두운 곳에서 뭘 했느냐면서 말이죠. 물론 그 돌은 살아있지 않으니 저에게 대답해주지 않았지만, 손바닥 안에서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대답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나를 부르는 호칭을 좋아합니다. 흔한 말이어도 좋으니 그 사람이 나에게만 해줄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서요. 남들이 다 하는 표현이어도 당신과 나 사이가 흔한 것이 아니니, 우리는 애칭으로 서로를 부르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특별해지는 거니까요.
손님들도 애칭으로 부르는 누군가가 있으신가요? 밤이 깊어지니 괜히 이런 걸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저는 있어요. 꽤 많답니다. 가능하면 나와 시간을 보내는 사랑하는 친구들을 전부 다 애칭으로 불러주고 싶어요. 한교동을 좋아하는 친구는 가끔 교동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매번 귀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주는 친구는 심땅이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심땅이는 심심풀이 땅콩이라는 뜻이랍니다. 또, 매운 감자 조림을 좋아하는 친구와는 서로를 매감조라고 부릅니다. 아주 오래된 별명인데도 항상 서로 안부를 물을 때면 "감조야 잘 지내니"라고 대화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친구 하나와 완보동물(*물곰이나 곰벌레라고 불리기도 하는 동물 문) 이야기를 하다가 그 학명에 꽂혀 애칭을 '깅완보'라고 붙이기도 했어요. 이렇게 돌아보니 저는 상대가 좋아하는 걸 애칭으로 정해주는 습관이 있네요. 오늘도 손님들 덕분에 재밌는 발견을 했습니다.
이번 레터를 다 읽고 나신다면 주변의 누군가를 애칭으로 불러보세요. 조금 낯간지럽고 어색하더라도. 분명 어색하다며 웃는 이들도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답해주는 이들도 있을 거예요. 그냥, 누군가의 하루를 더 다정하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으니까요. 해보셨다면 꼭 알려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