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후가 졸리기 시작했습니다. 최고 기온이 10도를 넘던 날
"오늘 최고 기온이 15도래요"
그 말을 듣자마자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습니다. 추운 겨울동안 기다려왔던 아주 반가운 손님이 드디어, 마침내, 비로소 찾아온 것 같았어요. 따듯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주변이 따듯한가? 하고 느낄 정도로 스스로 둔감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 날씨가 괜찮은가? 아닌가? 하면서 매 번 긴가민가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요.
이전에는 제가 괜찮은지 아닌지도 다른 사람의 의견이 필요했습니다. 건강하지 않던 시절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 그 때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지만,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한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가 가끔 생각납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온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겨우겨우 창문을 열었던 날이요. 그 때도 봄이었습니다. 창 밖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었어요. 저는 지금도 나가는 걸 아주 싫어하는 사람인데, 그 때는 뭔가에 홀린 듯이 밖으로 나갔습니다. 새로 이사간 동네를 한 바퀴 크게 돌았습니다. 구부리고 있던 허리를 서서히 펴면서. 휴대폰이 아니라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모르는 길, 낯선 가게, 반짝거리는 건물들 사이로 파릇한 가지들이 조금씩 나와 있었습니다. 그 때는 정말로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부서져 내리는 햇살 아래에 눈시울을 붉히며 가만히 서서 울음을 참던 그 날이 기억나요.
그 날, 부스러지는 마음을 붙잡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커텐을 걷었습니다. 이불도 빨았고요. 바닥도 청소했습니다. 구석구석 물티슈로 닦고 옷장을 다 뒤집어서 옷을 정리했습니다. 지금은 좀 더러워진 상태지만, 누가 봐도 반듯하게 수건함도 정리하고 속옷함도 정리해 두었습니다. 전부 다 정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 결 가벼웠습니다. 여전히 선선한 봄 냄새도 좋았어요. 그 후로 가끔 마음이 울적해질 때면 주변을 둘러봅니다. 혹시 내가 정리하지 못한 게 있을까 싶어서. 정리하고 나면 괜찮아질까 하고 말이에요.
보통 봄이면 필수적으로 우울해지곤 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비단 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도 봄이 좋습니다. 봄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어요. 개나리 폭포가 쏟아지는 산책길을 걷거나, 얇은 긴팔 티 한장을 입고 정처없이 햇빛 아래를 헤매는 일들은 다른 계절엔 쉽게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번 봄은 작년보다는 길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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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저의 작은 타투이스트이자 사진작가이자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어주는 친구 동이의 작품입니다.
제법 아주 작은 봄 같아요.
@sujipga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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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제 서로의 이름을
최근에는 생일이었습니다. 생일은 별 거 아닌 거 같아요. 뒤늦은 축하는 괜찮습니다. 어른들이 '나이를 먹으면 생일은 별 거 아닌게 돼' 라고 중얼거리시는 말을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꽤 맞는 말입니다. 살아갈수록 생일보다 중요한 날이 더 많이 생기니까요. 생일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요. 그런데 또 이 글을 적으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생일은 나한테 오직 하나뿐인 날인데, 내 생일보다 중요한 게 정말로 있나? 어쨌든 소중함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다 동일하지는 않으니까요.
생일을 맞이해서 15년지기 친구와 함께 반지 공방에 갔습니다. 원래 이렇게 느끼한 걸 즐기는 타입이 아닌데, 둘 다 마음이 동해서 얼렁뚱땅 함께 오게 되었어요. 사실 우리가 떨어져 지내는 게 처음이라 그 마음을 메우려고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와는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새학기가 시작될 무렵, 친구가 제 이름을 잘못 부르면서부터 친구가 됐습니다. 아직까지도 그 때 얘기를 하면서 "나는 정말로 네가 C(*잘못 부른 친구의 이름) 인줄 알았지 뭐야" 라며 우스갯소리를 덧붙입니다. 우리는 빠르게 친해졌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 친구가 열렬히 구애를 펼쳤습니다. 별로 친하지 않은데도 자기 집에 막 초대하고, 쉬는시간이면 떨어지질 않고 계속 "너가 제일 좋다"며 붙어있기 일쑤였습니다. 그 때 이미 친구가 알아봤던 걸까요? '이 녀석... 평생을 붙어있어도 괜찮겠군!'하고 말이죠.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그 이후에도 찰떡같이 붙어다녔습니다. 문제는 친구와 제가 꽤 상극이었다는 거였지만, 이 문제는 지난 시간이 다 해결해 주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잘 맞는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삶이 달라지고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안 맞는 것 같고요.
그래도 여전히 잘 지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 친구는 대학교를 가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방학에는 미친듯이 술도 마시면서요. 물론 저는 일을 시작했고, 미친듯이 술을 마시는 대신에 세미 정장을 입고 앳된 얼굴로 을지로에 출근했습니다. 친구들의 술자리에 가장 늦게 도착하기도 했고요. 요점은 20대 초반 내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친구를 만났다는 거예요. 이 친구와는 비가 와도 동네 공원을 두 시간씩 산책하고, 새벽까지 시덥잖은 이야기를 떠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너무 붙어 다녀서 같이 코로나에 걸리진 않았을까 싶어 2박 3일동안 좁고 지저분한 방에서 격리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대 중반이 지나고, 후반이 된 지금까지도. 정확히 말하면 작년까지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만났습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몇 번의 연애와 이별을 반복하면서요. 그러다 제가 이사를 가게 됐습니다. 동네와는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의 다른 서울로. 서울의 다른 쪽으로. 나중에 알았지만 그 시간이 서로의 시간에 아주 공허하고 외롭게 남았어요. 이사를 준비하고, 이사를 하고, 만나지 못했던 짧은 한 두달의 시간이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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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만드는 동안 서로 시답잖은 소리를 하면서 서로에게 주기 위한 반지를 조물조물 만들었습니다. 어떤 과정은 재빠르게 지나가고, 어떤 과정은 시간이 걸렸고, 우리끼리 할 수 없는 일은 공방 선생님이 도와주셨습니다. 친절한 목소리로 잘 하고 계신다고 이야기해주실 때면 괜히 우쭐해지기도 했습니다.
반지가 마무리되어갈 때 즈음 안쪽에 손글씨를 새길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셨고, 서로의 손글씨를 새기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만난 년도와 서로의 이름을 쓰기로 했습니다. 몇 번씩 반복해서 이름을 적었습니다. 친구는 글씨를 잘 쓰겠다며 집중해서 볼펜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순서를 기다리다가 '이제 그만 쓸래' 하고 펜을 놓는 친구에게 더 써보라고 권유했어요.
"야, 우리가 언제 이렇게 또 서로의 이름을 많이 써 보겠냐"
그렇게 서로의 이름을 각자 열 번 정도 더 적어봤습니다. 한자로도 적어 보고, 영어로도 적어 보고, 서로의 손글씨로 삐뚤게도 적어보았어요. 다 마음에 들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없었어요.
반지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지쳤고 조금 피곤하기도 했지만 재밌었습니다. 나오는 길에 다음에는 도자기 공방에 가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듯이 반대로 헤어졌습니다. 원래는 항상 같은 곳으로 갔었는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앞으로 서로가 없는 시절이 더 익숙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른들이 자꾸 그 때가 좋았지, 라고 얘기하는 것이 정말로 그 때가 더 좋아서라는 것도.
다 만들어진 반지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면서 그래도 우리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서로의 마음이 모이는 곳은 한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겠죠. 그래도 어쩌면, 작은 마음 하나쯤은 함께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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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친절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원래 저는 친절한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원래 친절한 사람이라는 건 없다는 말이 좀 더 옳은 표현인 것 같아요. 우리는 전부 조금씩 친절하고, 조금씩 불친절한 면이 있으니까요. 원래 사람은 입체적입니다.
이사 오기 전 유일하게 좋은 점은 4호선도 2호선도 오래 걸리지만, 한강을 보며 앉아 올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쌍문역에서 한참을 달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고 나면 거진 1시간을 넘게 앉아서 책을 읽었습니다. 앉는 날에는 책을 읽었고, 서서 가는 날에는 창 밖을 내다 봤습니다. 강변을 지나고 나면 창밖으로 보이는 싱그러움에 여름이 좋았습니다. 윤슬이 반짝이는 강가를 빠르게 달려서 지나칠 때면, 열차 안에서 휴대폰에 집중하던 사람들도 하나둘 창 밖을 쳐다봅니다. 잠시 뭔가에 홀린 것처럼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이사 오고 난 후에는 한강을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출퇴근시간이 더 빨라졌고, 사람도 더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출근시간에 책을 읽을 수 없지만,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출근길이 편하기만 합니다. 다만 인파 속에 갇혀서 여기저기 치이고 밟히다 보면 '차라리 그 때가 나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인파 속 출근길은 하루 중에 최악인 것 같아요. 발이 밟히는 건 기본이고 우르르 들어오면서 나가는 사람을 몸으로 미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이 터져라 소리질러도 요새는 다들 아주 작은 이어폰을 끼고 노이즈 캔슬링을 하고 있으니, 들리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키가 작은 탓에 밀쳐지기는 또 얼마나 밀쳐지는지.
그래서 출근 시간, 퇴근 시간에는 좀 공격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나를 지키기 위해서 과격하게 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가끔 지하철을 타기도 전에 이게 발동됩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시간의 지하철에서 어쩌다 치이는 사람을 째릿, 쳐다보기도 하고요. 그러고도 아차 싶어 시선을 금방 거두기는 하지만요.
어쩌다 이렇게 예민하고 날카로운 사람이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일상에서도 친절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잘 안 됩니다. 그래서 친절이 넘치는 날 조금씩 덜어 두었다가 필요하면 꺼내 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절 전용 용기에 넣어두고, 컨디션이 좋은 날 살짝씩 더 넣어 두고. 컨디션이 나쁜 날에는 친절을 잔뜩 챙겨서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꼭 베풀어야만 하는 1일 치 적정량 친절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다같이 조금씩 따듯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서로 사랑하고 아픔을 덮어주고 상처를 이해하자는 말은 너무 거창합니다. 그냥 친절하게 살아요. 친절하게, 상냥하게. 물론 가장 어려운 일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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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 이렇게 친구가 찍어서 "네 생각이 났어"라고 이야기하며 어쩌다 보내주는 사진이 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건 사랑에 가깝겠지만... 친절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고요.
이 또한 동이의 사진입니다.
@sujipga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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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를 마치며
2호 편지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내용이 약간 중구난방인 부분도 있는 것 같지만. 쓰면서 내내 즐거웠습니다. 봄이 오니까 마음도 한 결 가벼워진 것 같아요. 이제 두꺼운 옷을 입고 벌벌 떨면서 거리를 걷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좋습니다. 겨울의 고요하고 흰 풍경을 더 많이 볼 수 없다는 점은 좀 아쉽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계절은 언젠가 돌아오지요. 부디 이번 봄은 오래 갔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세요.
행복하시고요.
또 봐요.
디디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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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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