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밴드의 뉴스레터를 받았습니다
다시 편지를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싶은데, 이 이야기가 빠지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오래전부터 아주 좋아했던 밴드가 있습니다. '브로콜리 너마저' 라는 귀여운 이름의 밴드예요. 1집부터 팬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조금 늦게 알게 됐어요), 18살부터 가장 꾸준히 듣는 밴드입니다. 사실 인디 음악, 밴드, 홍대, 공연 이런거에 관심조차 없던 제가 가장 처음으로 갔던 콘서트가 브로콜리 너마저의 콘서트였습니다.
하늘색 티셔츠에 약간 물이 빠진 생지 데님을 입고, 홍대입구역에서 내려 혼자 밥을 먹고 공연장까지 터덜터덜 걸어가던 길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약간 쌀쌀했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 때까지도 그렇게 많이 기대하지는 않았습니다. 음, 이렇게나 오래 들었으면 한 번은 공연을 가야지 하는 생각 뿐이었던 것 같아요.
운이 좋게도 저는 1열이었습니다. 중앙은 아니어도 왼쪽 끝에서 다섯 번째 쯤 되는 괜찮은 자리였어요. 크게 기대도 되지 않았고, 공연은 잘 몰랐기에 멀뚱히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MD상품도 한 번 슥 둘러보고 들어왔지만 딱히 사고싶지는 않았습니다. '괜찮은 상술이군'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원래 소비자들은 괜히 삐뚤게 굴곤 하니까요.
그리고 진부하지만 그 공연이 제 삶을 약간 바꿨습니다.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밴드의 노래가 좋았고, 베이스가 둥둥 울리는 소리가 제 심장 소리인가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쿵쿵 퍼지는 드럼의 리듬이, 이상한 전자음이 나는 피아노가 생생히 머리에 꽂힐 때면 눈이 번쩍 떠졌습니다.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는 잔잔한 것들이 많아, 발라드 콘서트 같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노래와 연주가 주는 힘을 온전히 두 시간 정도 혼자 받아내고 나서는, 눈물 범벅이 된 채로 콘서트장을 나와서 MD를 10만원 어치 정도 샀습니다. 그 때 샀던 티셔츠는 여전히 잘 입고 있고요. 맨투맨까지 살 걸 그랬습니다. 아직도 잠깐씩 떠올리면 후회가 돼요.
그런데 콘서트를 자주 하지는 않아서, 매 번 후회가 됩니다. 놓칠 때 마다요. 이번에도 놓친 걸 후회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공식 계정에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뉴스레터를 시작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뻤어요. 한 줄이라도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소식을 더 접할 수 있다는 게. 곧 나올 4집의 내용과 과정을 담은 뉴스레터라는 점도 기뻤습니다. 그렇게 혼자 들떠서 기뻐하고 레터를 신청했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글도 이렇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진 않았을까?
30명 남짓한 작고 지루하고, 기한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엉망인 편지였더라도 말이죠. 대부분은 편지였고, 어쩌다가는 소설이었고, 어떨 때는 짧은 감상이기도 했던 글들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브로콜리 너마저의 뉴스레터를 받고 나서는... 정말로 다시 써야겠다는 확신을 했습니다.
누가 기다리든지, 기다리지 않든지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