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에게 무례한 행동 감희리에서
가끔 인생은 컨셉을 지킨 자와 지키지 못한 자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는 철저하게 자신의 '추구미'를 지키며 살아가고, 누군가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솔직 담백하게 사는 것이지요. 추구미를 잘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끔 자아가 충돌하는 경험도 하겠죠.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야!"라면서요. 그런데 저는 뭐,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별로 없습니다. 대충 솔직하게 살다보면 내가 좋은 사람은 내 곁에 있고, 내가 싫은 사람들은 떠나가고. 힘들여 붙잡지 않아도 돌아오기도 하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싶은 건 아니었고 최근에 수를 만났습니다. 수는 아주 오래전에 만난 아르바이트 동료로, 술을 마시다가 친해졌습니다. 일주일에 일곱 번 술을 마셨습니다. 수가 끝나는 시간을 굳이굳이 기다려 꼭 술을 먹었습니다. 수와 저는 두 살 차이가 났지만 잘 지냅니다. 요즘도 가끔은 여행을 가고, 가끔은 만나서 지독하게 술도 마시고요. 필름이 끊길 때까지 객기를 부리며 먹고 들어가야 '음. 당분간은 안 봐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지난 여행 이후로 꽤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어서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제가 봤을 땐 이게 첫 번째 실수였던 것 같아요. 들뜨지 말았어야만 하는데, 또 기대에 부푼 풍선처럼 둥실둥실. 이런 날은 술이 달고 잘 들어가고... 그러다 보면 또 필름이 끊어지고요. 어쨌든 수와 만나자마자 익숙한 안부 인사를 나누고 떠들었습니다.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하고 맥주를 두 잔씩 먹고 배가 좀 두둑해졌을 즈음 2차를 옮기기로 했습니다.
2차로는 역사가 유구한 후보들이 언급됐지만, 수는 꼭 감희리에 가야겠다고 했어요. 제목의 감희리가 바로 술집입니다. 서울 끝자락에 있는 아파트 단지 인근의 작은 술집. 어디 시골집 이름이 아니고요. 혹시 누군가의 고향 이름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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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희리는 들어가자마자 생각지도 못한 그리움이 느껴지게 만드는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나는 이런 고향이 없고, 수도 마찬가지일 테지만요. 게다가 우린 9N년생이기 때문에, 이런 곳에서 자란 적도 없죠. 그저 바보상자(*텔레비전)로 보던 낡은 시골집 풍경 중에 하나일 뿐이지. 그런데도 감희리에 들어가자마자 노란 장판이 둘러진 책상, 덜컥거리는 미닫이문, 창문 옆에 낡은 라디오와 이상한 십계명부터 붓글씨까지. 어디에 실제로 존재하는 슈퍼마켓을 똑 떼다가 옮겨온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슈퍼만 하는 게 아니라 동네 아저씨들이 막걸리 두어 잔은 걸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가맥집 같은 곳 말이죠. 우리는 들어가자마자 연신 우와, 우와 하면서 감탄사를 남발했고요.
그러다가 웰컴주로 청주를 한 잔씩 받아 마시고, 옆의 아이스박스에서 맥주와 소주를 꺼내어 마시고 있자니 사장님께서 조심스레 다가와 삼을 주었습니다. 말 그대로 삼. 인삼, 산삼 할 때 그 삼이요. 술집에서 삼을 받아본 게 처음이라 둘다 우하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무래도 그 즈음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삼을 먹고 나서 우리는 몇 마디 주고받다가 "삼에게 무례한 행동이야"라고 이야기했는데, 대체 무슨 맥락에서 그 얘길 했던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우리는 서로 무례를 주고받고 웃고, 술을 마시다가 사장님이 주신 복권을 긁었습니다. 뭘 하면 서비스로 주시는 거라고 했었는데요. 이래서 술 마신 날의 기억은 바래지기 전에 적어야 하는 것 같아요. 어쨌든 새롭고 재밌었습니다.
감희리는 일찍 마감하는 곳이었고 우리는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나와야 했습니다. 아쉬웠지만 또 다른 술집을 가기로 해서 괜찮았습니다. 그날도 코가 삐뚫어지게 먹고 쿨하게 헤어졌습니다. 어찌나 쿨하게 헤어졌는지 수는 자기 노트북을 잃어버려서 다음 날 오전에 허둥지둥 찾으러 나갔다는 후일담이 있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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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에게 무례한 행동
감희리를 나오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바래졌지만. 우리가 겪어본 적도 없는 시대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뭘까요. 말로만 전해 듣고 얼마 남지 않은 영상 자료로만 본 그 세월이 낭만적이고 그립다고 느끼며, 7080노래를 듣고 향수에 젖는 이유가요. 김트리오의 그대여 안녕히(*1980년대의 성인가요)를 들으면서 막연히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또 뭘까요.
저는 겪은 적이 없으니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가끔 마음 한편이 찌르르 떨리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 세대가 그립고 낭만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분명히 있겠지요. 어쩌면 지금처럼 풍족하지 않아도 기꺼이 뭔가를 나눌 수 있는 세대였기에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지요. 보답을 바라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순수하게요. 어쩌면 지금은 이룰 수 없는 나의 추구미가 그 세월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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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의 입장에선 우리도 외계인이에요
저는 가끔 외계인 생각을 합니다. 외계인 생각을 한다고 쓰니까 이상한데, 저는 외계인이 정말로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예요. 왜냐면 아주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관점에서 생각했을 땐 외계인이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솔직히 외계인이 있든 없든 나는 내일 출근해야 하고, 또 퇴근하지 못하고 야근을 해야 하고. 야근을 하고 나서도 "당연히 해야지"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억울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니까요.
사실 앞에 말은 화풀이 비슷한 거고, 제 말의 요지는 외계인이 있든 없든 '나는 나일 뿐'이라는 것이죠. 외계인이 있어도 디디는 디디. 수는 수. 제인은 제인이니까. 전 직장이 외계인과 미스터리에 대한 걸 다루는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이렇게 이야기하니까 뭐 대단히 이상한 곳 같은데, 그냥 유튜브 채널이었다) 저는 아직도 불신론자로 남아 있습니다. 불신론자보다는 의문론자라고 말해야 되지 않을까요? 의문을 갖는 사람. 계속해서 외계인이 있을까? 라고 고민하는 사람이죠.
그런데 이렇게 시시껄렁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한번은 술자리에서 소리내어 친구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너네는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해?"
술자리가 약간 고요해졌다가, 하나둘씩 제 의견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술자리에서는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좋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외계인은 반드시 있다고 주장하는 밥 라자르(*미국의 유명한 음모론자.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정말로!)같은 친구도 있었고, 외계인이 어딨냐며 있으면 밥 먹여 주냐는 회의론자도 있었어요. 저는 어떤 의견에도 동조하지 않고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조용히 있던 E가 술잔을 탁 내려놓고 말했습니다.
"외계인의 입장에서는 우리도 외계인이잖아"
그렇죠. 우리는 너무 지구인 중심 사고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웃으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그 이후로 저는 머리가 좀 더 복잡해졌습니다. 그럼 외계인이 지구에 찾아오면, 불시착하면 어떻게 해줘야 하지? 하는 상상을 덧붙였던 것 같아요. 그날의 술자리는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저 말만이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외계인의 입장에선 우리도 외계인이란 말.
그런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인은 나와 다른 환경, 가족, 학교, 지역에서 살아온 다른 문명의 생명체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고 우리가 타인과 소통할 때 "깨랑까랑. 끼리릭." 이렇게 말하지는 않지요. 그냥 평범하게 "안녕"으로 시작하죠. 외국인과 소통할 때도 마찬가지로 "Hi"부터 시작하고요.
그러니 만약 외계인이 있다면, 지구에서 만나게 된다면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요? 여기까지 쓰다보니 아무래도 저는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있든 없든. 만약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인사해야 하니 담력을 기르고 편견을 버리며 살아야겠네요.
언젠가 외계로 찾아온 외계인이 "Hi"라고 인사하면 능청스럽게 손을 흔들어 줄 수 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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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하늘을 봅니다
여름이 다 지났다고 하려고 했는데, 이 레터를 쓰는 9월 중순까지도 날이 매우 덥습니다. 날이 풀어지긴 커녕 더운 여름 기운이 기승을 부려서 저는 아직도 잠들기 직전까지 에어컨을 틀고 있고요. 여름이 좋다던 친구들도 이제는 백기를 들 정도의 날씨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번 여름을 지내면서 확실해졌어요. 저는 여름이 싫습니다.
여름은 습하고, 덥고, 날씨가 오락가락하고 끈적이고요. 자전거를 타도 시원하지 않고 벌레를 5백마리정도 먹게 됩니다. 러닝도 마음처럼 잘 안 됩니다. 너무 더우니까 얼마 달리지 않아도 숨은 턱끝까지 차오르고, 습도에 영향을 받는 발목이 삐걱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억지로 뛰어야지 뛰어야지 하고 달리다보면 눈앞이 아득해집니다. 기절 직전까지 갔다가 포기하고 돌아온 게 하루이틀이 아니었습니다.
달리지 않아도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끈적거렸습니다. 개구리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개구리들이 항상 이런 기분일까... 하고 쓸데없는 상상을 하기도 했어요. 어쩌면 여름은 외계인 생각을 비롯해서 쓸데없는 상념에 젖을 수 있는 계절일지도 모르겠네요. 낮이 길고 밤이 짧으니까요.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생각하는 시간도 길어지잖아요.
그럼에도 지나야만 하는 계절이기에 딱 하나 좋은 점을 꼽으라면 높고 예쁜 하늘입니다. 여름엔 하늘이 다채로운 색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언제는 맑고 높아서 눈부시게 빛나다가, 저녁이면 꿉꿉하지만 아름다운 분홍빛, 연보라빛, 주황빛 노을을 몰고 찾아옵니다. 여름의 유일한 좋은 점이죠.
가끔 멈춰서 하늘을 찍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예쁜 풍경을 보면 찍고 싶다는 마음이 피어납니다. 너무 힘든 날에는 그냥 지나치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돌아오지 않을 텐데, 하며 감상에 젖기도 합니다. 제가 사진에 집착하는 이유는 순간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하늘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합니다. 예쁜 하늘이 좋지만 그래도 싫은 여름이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선선한 바람이 부는 날 고궁 돌담길을 애인과 손 잡고 걸으면서 도란도란 이야기할 수 있는 계절이 그리워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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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를 마치며
연휴가 끝나기 전에 한 통이라도 보내야겠다는 강박으로 시작한 레터가 순식간에 끝났습니다. 할 말이 좀 많았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다 쓰고 나니 역시 나는 뒷심이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연휴 내내 일도 하고, 가족들도 만나고, 강아지도 쓰다듬고 친구에게 간간히 안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오래 연락하지 않던 친구와도 다시 연락이 닿아 만나자는 실없는 약속을 하고, 새벽까지 피시방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쉬어도 쉬어도 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이 편지를 받아보는 손님들도 더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 하루를 살아내겠지요.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김효선 작가의 <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이 책은 백혈병에 걸린 어린 딸아이의 투병 일기를 쓴 엄마의 책이에요. 내 인생이 지치고 힘들 때면 진심을 꾹꾹 눌러담은 이 이야기가 자꾸만 떠오릅니다. 지금은 내용이 가물가물하지만, 읽으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살아만 있으면 어떻게든 된다는 문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요. 살아가면 어떻게든 된다, 이 문장이 제 삶에 아주 큰 원동력이 됩니다.
아무리 힘들고 거지같은 하루여도 살아만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든 됩니다. 당장 제가 세계를 정복하고 100억이 생기지는 않아도, 꾸준하게 살다보면 통장에는 월급이 들어오고, 나는 그걸로 작은 꿈을 꾸며 단칸방에서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할 수 있지요. 그러면서 일하는 날이 괴롭지만, 쉬는 날이 달콤하고 행복하다는 걸 또 알 수 있고요.
이렇게 말하고서도 저는 아마 다음 날이 되면 짜증을 내며 회사에 갈 거예요.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하지 못할 수도 있고요. 그래도요. 우리가 살아있다면 행복한 날은 언젠가 옵니다. 계속 힘내서 살아가다보면. 아주 잠깐이라도, 조금이라도 행복할 날이요.
그러니까 우리 또 잘 살아봅시다. 건강하게. 아프지 마세요.
더위 조심하시고요.
행복하세요.
또 봐요.
6호에는 사랑과 감사를 담아서 보냅니다.
디디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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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
발신자 dayeoninbuisene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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